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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을까?

by 펀할펀자 2019. 6. 3.

 

우리보다 낮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은 어떻게 핵을 가지게 되었을까?

 

북한은 좋지 않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매년 많은 인력과 자본을 미사일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이런 북한의 노력으로 현재 ICBM급의 마사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북한은 도대체 어떻게 핵과 미사일 기술을 손에 넣었을까? 북학은 핵 개발 역사를 알아보려면 먼저 과거에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기술이 개발된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력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한 이후이다. 당시 2차 대전후 영국과 소련에서도 원폭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무기 독점체제가 무너졌고, 미국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원자력의 평화이용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를 설립하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붐이 일어났었는데 그 이유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에 북한과 소련은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이란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 의해 많은 북한의 과학자들이 소련에 파견되었다. 북한은 이후 영변에 원자력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원자로 건설과 농축 우라늄 개발에 뛰어들었다.

 

 

북학이 핵을 개발하게된 또 다른 배경으로는 정치적인 문제와 국제적인 정세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북한은 소련의 붕괴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중국이 노선을 갈아타기 시작했다. 남한은 우위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당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학이 핵 개발에 본격적으로 열을 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견해는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서 핵무장을 준비하였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핵무기가 북한보다 남한에 먼저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1950년대 후반 주한 미군은 북한보다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해 놓았다.

 

 

더 재미난 사실은 그때 당시에 북한이 비핵화 선언과 핵무기 확산 반대를 먼저 주장했다는 점이다. 1956년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12차 회의 때 '조선 반도 핵무기 반입 반대 결정'이 있었고, 1986년 북한은 조선에서 비 핵 지대, 평화지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제안을 발표했다. 남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었고, 북학은 핵이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리비아나 이라크처럼 핵을 포기한 국가가 내전, 전쟁 등 혼란을 격으며 망해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마치 '핵이 없으면 우리도 저렇게 될 거야'라는 막역한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또한 미국에 대한 방어용 또는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그럼 한국은 왜 핵개발을 하지 못했을까? 한국의 핵개발에 대해 잠깐 집어보자면, 우리 나라도 충분히 핵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하지만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입김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NPT(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되어 있고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핵을 개발할 수 없다. NPT 조약에 따르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사용을 금하고 있고, 핵을 무기 또는 장치로 제조하는 것을 막고 있다. 

 

 

북한은 1974년에 IAEA(국제원자력기구), 1985년에 NPT에 가입했으나 각가지 이유로 핵사찰을 피했고, 결국 1993년에 IAEA의 특별 사찰을 거부하고 NPT 탈퇴를 선언하였다. 그 결과 IAEA는 북핵 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했고,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정세와 한반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최근 강력한 대북 제제와 국제적인 사회 분위기의 큐탄으로 인해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서류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한차례 회담이 결렬되기도 했다. 최근 김 위원장이 제3차 조미 수뇌 화담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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